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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여왕의 시대 (합본)

여왕의 시대 (합본)
  • 저자바이하이진
  • 출판사미래의창
  • 출판년2013-10-25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23)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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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대에,

    세계는 무엇이 달라졌고, 어떻게 진보를 이루었는가?



    요부의 대명사 클레오파트라, 권력의 화신인 측천무후와 예카테리나,

    남자를 능가하는 용기와 지혜를 지녔던 엘리자베스 1세와 이사벨 1세,

    그리고 서태후와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남성 못지않은 담력과 의지, 탁월한 지혜와 과감한 결단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12명의 여왕들.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였는가? 그리고 그들의 치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열두 여왕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세계사를 만나 보자.



    ? 탁월한 지혜, 비상한 두뇌로 남성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 비범한 담력,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력으로 거칠 것이 없었다.

    ? 불굴의 의지, 그 어떤 시련과 좌절도 성공을 위한 계단에 지나지 않았다.

    ? 명철한 수단, 내정과 외교에 있어서의 처세는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시대가 낳은 열두 명의 여왕이 펼치는 흥미진진 세계사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던 시대에,

    세계는 무엇이 달라졌고, 어떻게 인류는 진보했는가






    남녀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시대의 큰 흐름과 여성 경제력의 상승으로 인해 남자들은 이제 반대로 여성들의 눈치를 보고, 기업에서는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한 국가의 수장이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 독일의 메르켈 총리, 인도의 간디 수상과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등이 정치계의 여걸로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나 이 또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라는 꿈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도 결국 치열한 접전 끝에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오바마와의 대결을 '흑백'으로 보기보다는 '남녀'로 보는 시각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 선진국 미국에서도 아직은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일까?



    그런데 여성에게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했던 그 옛날에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오른 여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 12명의 여왕들이다. 이 가운데 마리아 테레지아와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측천무후는 여왕도 모자라 '황제'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비록 황제는 아니었으나 황제 곁에서 황제를 좌지우지한 여인들 또한 많았다. 네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 동치제의 어머니였던 서태후, 순치제와 강희제를 제위에 앉힌 청나라의 효장문황후가 그들이다.

    유럽 최후의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스페인의 통일을 앞당긴 이사벨 1세와 합스부르크 왕가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의 전쟁을 이끌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엘리자베스 1세, 최강 군사력을 키운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중국을 침입하는 변방의 무수한 세력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측천무후 등은 여느 남자 황제 못지않은 담력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여걸들이었다.



    이들은 사랑을 쟁취하는 데 있어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와 크리스티나 여왕을 제외하곤 모두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얻었다. 왕위 계승자였던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 이사벨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배필을 스스로 고를 수 있었다. 물론 이들과 결혼한 남자들은 여왕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택하는 대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애초에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오히려 더 큰 권력을 차지했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남자를 마음대로 요리했다.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여왕으로는 로마의 두 최고 권력자를 연달아 연인으로 삼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80이 넘어서도 미모를 유지했던 측천무후는 아예 젊은 미소년을 차출하는 일을 관장하는 기관을 설치하였다. 예카테리나 2세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주변에 늘 남자 애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 통이 컸던 그녀는 애인들에게 큰 재산과 벼슬을 하사했기에 여황의 사랑을 얻으려는 경쟁도 치열했다고 한다. 희대의 악녀로 역사에 기록된 아그리피나의 남성 편력은 모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중국의 서태후도 권력을 잡는 데 남자의 힘을 교묘히 이용하였다.





    열두 여왕과의 생생 인터뷰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여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가상 인터뷰의 형태로 한번 들어보자.





    클레오파트라 - 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딸로 태어났죠. 왕실의 내부 분열 때문에 형제끼리도 권력다툼이 심했답니다. 저보다 어린 남동생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는가 하면 권력싸움에 밀려 궁궐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 내가 여왕의 자리의 오를 수 있었던 건 카이사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로마의 힘이 없었더라면 아마 여왕이 되기 힘들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저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지요.



    아그리피나 - 나는 로마의 황후. 숙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결혼했지요. 그가 나의 숙부이긴 했지만 권력을 위해서는 결혼이 뭐 대수인가요. 그 덕분에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들인 네로를 황제로 만들 수 있었답니다. 나는 권력의 맛을 즐겼어요. 장애물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었죠. 황제인 남편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아들 네로의 미움을 받아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고 말았답니다.



    측천무후 - 당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갔을 때 나는 지극히 낮은 신분이었죠. 하지만 나는 권력 게임의 룰을 일찌감치 깨달아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갔죠. 결국 당태종은 나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아들인 당고종은 나를 아내로 삼지 못해 안달이었답니다. 나는 그를 도와 정사에 관여하게 되었고 곧 정치가 나의 적성에 딱 들어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병약한 남편이 죽은 이후, 내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내 몸으로 낳은 아들의 목숨과 황제의 자리를 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죠. 어쨌든 난 황제가 될 운명이었으니까요!



    이사벨 1세 - 내가 태어났을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유와 아라곤, 포르투갈 그리고 그라나다로 나뉘어져 있었죠. 비록 왕의 딸로 태어났으나 저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왕권도 약했고 이복오빠인 엔리케가 왕이 되자 저는 궁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어요.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와의 결혼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을 등에 업은 엔리케 측과 전투 끝에 저는 카스티유의 여왕 자리에 오르게 되었죠. 후대인들은 저를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라고 부르죠. 제가 신대륙 발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모두 아시죠?



    엘리자베스 1세 - 나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바람둥이 왕인 헨리 8세. 엄마는 비운의 여인인 앤 볼린이죠. 어린 시절,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았던 저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유명하지 않나요? 이복언니인 메리가 후사 없이 죽고 나서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나를 몰아내려는 세력과 싸워야 했죠. 하지만 사촌인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처형한 후 스페인과 한판 결전을 치르고 나서는 아무도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답니다. 저는 영국을 위해 끝가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 주위에 남자가 없었다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죠? 영국 역사상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는 가장 화려하고 강건한 전성기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효장문황후 - 나는 황제의 아내, 황제의 어머니, 황제의 할머니였습니다. 나의 조상은 징키스칸. 나는 몽골 여인입니다. 대대로 청나라 황실은 몽골 여인을 황후로 맞이하였죠. 나는 황제의 네 번째 비로 들어가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비록 아홉 번째 아들이었으나 나는 기어이 그 아들을 황제로 만들었죠. 아들 순치제의 뒤를 이어 손자인 강희제가 황제에 오르면서 청의 태평성대가 시작되었답니다. 강희제는 어려서부터 제가 철저히 교육시킨 덕에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크리스티나 여왕 - 나의 아버지는 '북구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입니다.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사망하고 어머니가 우울증에 걸려 지내는 바람에 어린 시절은 참으로 험난했지요. 하지만 아버님이 일찍 제왕교육을 시작하셨고 저 또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순탄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왕위를 계승할 후사가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안 했거든요. 저는 사촌인 카를과 결혼하는 대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리아 테레지아 - 저에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물려주시고자 했던 아버지 카를 6세의 바람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죠.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도 저 때문에 일어난 거랍니다. 하지만 비록 황제라는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저는 황제나 마찬가지였죠. 남편인 프란츠가 통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저의 재위 기간 동안, 유럽에는 전장의 포화가 그칠 날이 없었답니다. 저는 10명이 넘는 자녀를 두어 모두 유럽의 왕실로 시집 장가를 보냈답니다.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넷은 내가 가장 아끼는 막내딸이었죠.



    예카테리나 2세 - 나는 독일에서 러시아로 시집 온 여자입니다. 남편 표트르 3세가 조금만 내게 애정을 가지고 대했거나 그가 조금만 유능했더라도 내가 굳이 황제의 자리를 탐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해도 해도 너무했어요. 정말 안됐지만 저는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의 자리는 정말 제게 딱이었던 것 같아요. 후세 사람들도 저를 '대제(Great)'라고 부르는 걸 보면 맞는 말 아닌가요.



    빅토리아 여왕 - 저는 왕위를 잇기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왕위계승자가 없다는 소리에 저의 아버지가 50이 다 되어 일부러 장가를 들어 저를 낳았답니다. 그래서 18살에 왕위를 물려받고 영국 여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수상의 몫이었죠. 그래도 제가 왕위에 있을 때 대영제국은 한창 잘 나갈 때여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렸습니다. 만국박람회도 개최했고 저는 인도 황제로까지 즉위했답니다.



    서태후 - 내가 함풍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을 때 청나라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져 있었지요. 외세에 쫓겨 다니던 남편이 숨을 거두자 나의 아들 재순이 황위를 물려받았고 나는 섭정왕후가 되었답니다. 이후 나는 죽는 날까지 어린 황제들을 대신하여 청나라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를 두고 후대의 사람들은 쑥덕거리곤 하지만 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청의 역사는 더 짧아졌을지도 모르죠.



    엘리자베스 2세 - 저의 아버지가 왕이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택해 왕위를 버렸을 때 저의 운명도 결정되었답니다. 왕실의 권위가 예전같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오늘날에도 왕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요. 여왕이 없는 영국. 상상이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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