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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 저자강판권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3-10-09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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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나무 : 조선을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

    조선을 괴롭힌 왜구, 그들이 노린 건 한반도의 소나무였다!



    소나무, 한반도의 수호신




    한국인은 소나무 하면 으레 강인한 ‘기백(氣魄)’을 떠올린다. 혹한에도 변치 않는 상록과 옹골진 줄기의 자태는 과연 그런 인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 기백이 겉모습에 불과한 게 아님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에서, 소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곳 어디에서도 소나무가 한반도를 수호한 힘센 수문장이었음을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나무를 통해 우리 역사를 읽어내는 학자, ‘나무인간’ 강판권. 그가 이번에 주목한 주제는 바로 ‘한반도의 수호신, 소나무’다. 예부터 한반도 거주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데 소나무는 핵심적인 자원으로 활용됐다. 의식주 어느 분야에서건 쓰임이 소홀한 일이 없어,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인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였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적으로부터 한국인의 안위를 지키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한반도 역사의 단절을 불러올 뻔했던 절체절명의 시기인 임진왜란 당시, 거대한 일본 수군의 군사력을 제압하는 전함이 되어 백척간두에 선 조선의 생명을 지켜낸 주역이 바로 소나무다. 이 책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는 바로 이 사실에 주목, 소나무와 한반도의 깊디깊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왜구, 한반도의 소나무를 노리다



    소나무로 만든 전함에 관심을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던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왜구가 한반도에 나타난 이유 중 하나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왜구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출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약탈을 일삼았다. 한반도 해안가와 도서 지역에 침입해 많은 것을 노략질해갔는데, 이들의 노획 대상 중에는 소나무도 있었다. 외딴섬에 정박해 목재로 쓸 소나무를 베어갔을 뿐 아니라, 베어낸 소나무로 그 자리에서 배를 만들기도 했다. 소나무로 만든 조선 수군의 병선을 탈취하거나 불사르는 일도 잦았다. 왜구에 관한 그간의 많은 연구가 간과하고 있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세종실록』의 다음 기사는, 조선의 해안가에 침입한 왜구가 소나무(로 만든 배)를 노리고 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전라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왜선 한두 척이 해도에 드나듭니다” 하고 보고했다. 임금이 그 까닭을 좌우에게 물으니, 이순몽이 대답하기를, “신이 옛날 대마도를 정벌한 후, 왜선을 추격하여 전라도의 연해변 섬을 순행해보니, 거기는 소나무가 무성하나, 육지와 거리가 멀어서 도왜(島倭)들이 매양 배를 만들기 위하여 오는 것이니, (중략) 신의 생각으로는 대마도에도 배 만들 만한 재목이 없으므로 반드시 전라 해도에 와서 배를 만들어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후략)” (『세종실록』 권13, 세종 3년 8월 24일)



    그간의 연구들은 왜구의 출몰 양상이나 조선 정부의 대처, 실제 전투 과정 등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출몰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사려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저자는 전사(戰史) 연구자들이 전투의 배경, 전황, 결과 등 일반적인 분석 대상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정작 그 싸움의 성패를 가르는 데 핵심 요인이었던 전함 자체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나무라는 자원을 역사 분석의 주요 검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온 그간의 연구 풍토가 낳은 한계라는 것이다. 해협을 건너 한반도에 온 왜구가 조선 양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한편으로, 조선의 소나무와 그것으로 만든 배 또한 호시탐탐 노렸음을, 이 책은 처음으로 조명하고 있다.





    왜선을 뛰어넘으려는 조선 정부의 분투



    저자는 조선 정부가 군사 분야에서 소나무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했으며 또 보존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꼼꼼히 확인해나간다. 아울러 병선 제작용 소나무의 주요 생산지를 소개하고, 병선용 소나무 수급을 둘러싼 조선 정부의 논의와 움직임을 살펴본다.

    3부 ‘병선 제작과 병선용 소나무 생산 지역’에서는 조선 전기의 수군 및 병선의 규모, 형태, 운용, 제도 변화 과정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태종과 세종 재위 기간을 중심으로 병선 제작 및 운용 현황을 살피는데, 미처 체제를 완비하지 못한 당시 수군 및 병선의 실태를 합리화하고자 다양한 보완책을 강구하는 노력이 다각도로 제시된다. 태종은 1408년, 당시 조선 병선이 크기는 크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 왜선을 만나도 쫓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움직임이 잽싼 쾌선 체제를 전면 도입해 기동성의 향상을 꾀한다. 귀화한 왜인이 만든 왜선을 활용해 한강에서 조선 병선과의 속력 차이를 직접 실험해보기도 했다.

    한편 1430년에는 나무못을 사용한 조선 병선이 쇠못을 사용한 일본 등의 병선에 비해 견고함이 떨어지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세종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43년 뒤인 1473년, 신숙주는 성종에게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왜선은 움직임이 경쾌하지만 판자가 얇고 쇠못 구멍이 점차 넓어져 물이 새서 쉽게 부패하는 반면, 조선 병선은 무겁고 둔하지만 나무못이 젖을수록 배의 견고함을 더하므로 오래 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 역시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한 분석이었다. 이러한 일본 병선과의 성능 비교 및 개선 노력은 조선 전기 내내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다. 그러나 병선 체제를 개선하고 확충하려는 조선 정부의 움직임은, 선박 관리 소홀과 담당자들의 비리, 목재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폐라는 문제와 맞닥뜨려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바로 소나무 목재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소나무 전함,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왜구 침입을 순조로이 막아내기에 조선의 병선 체제는 충분치 못했지만, 다행히 이를 상쇄할 요소가 몇 가지 있었다. 소나무라는 우수한 선박 재료, 전술적 우수성을 지닌 거북선과 판옥선, 그리고 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한 인물, 바로 임진왜란 해전의 수훈갑인 이순신 장군이다. 4부 ‘일본과의 전쟁과 소나무 전함’은, 국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소나무의 활약을 자세히 추적한다.

    조선은 2, 3차 대마도원정을 통해 왜구를 선제 제압하기도 했지만,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왜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이어갔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저자 강판권은 임진왜란을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 간의 싸움’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돌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일본과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거북선 등 전함의 재료로 소나무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맞섰던 왜군의 안택선은, 구조상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장점을 지녀 주력 함선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배는 조선 수군의 거북선과 충돌 시 쉽게 부서졌다. 거북선이 소나무로 만들어진 반면, 안택선은 상대적으로 재질이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병선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 수군은, 이처럼 소나무라는 우수한 재료와 이순신이 발휘한 지략의 화학작용을 통해, 막강한 병력의 일본 수군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조선, 소나무 보호령을 발동하다



    한편 이 책의 전반부는 조선시대 소나무의 쓰임과 남용 사례, 그리고 조선 정부가 소나무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또 보호하려 애썼는지 아울러 살핀다. 소나무는 한반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종으로, 한국인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나무였다. 한반도 사람들이 나날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자원이었음은 몰론, 조선 정부에서는 국가 운영의 핵심 자원으로 여기고 매우 큰 상징성을 부여하며 소나무 자원 보존에 힘썼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소나무 소비도 늘어,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들을 저자는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왕가의 관곽 제작 및 왕족의 사치, 궁궐 신축 및 보수, 사찰 건립과 목장 조성, 부자들의 남용, 기근 시 구황식품으로 활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현실에 맞서, 조선 정부는 소나무 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각종 소나무 보호 규정을 세운다. 또 대대적인 송충이 박멸에 나서고, 소나무 식재를 늘리는 등 다양한 보완책을 실행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왕족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도사리고 있어, 국가 차원의 소나무 보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별다른 자원이 없던 당시 현실에서 소나무 목재 부족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왕조를 거듭하며 수시로 정책을 보완해 소나무 보호 노력을 이어갔다. 소나무가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원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이처럼 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 방위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는 소나무가 조선의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며, “소나무는 한반도의 수호신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선 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지나온 날들을 이해하는 데 소나무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인데도,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저자의 일성은 큰 울림을 자아낸다.



    나무를 이해하는 것은 나무의 삶만이 아니라 나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삶, 나아가 인간의 삶을 통해 만든 역사와 문화의 이해에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소나무가 한반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소나무가 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간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나무에 대한 이해는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나오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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