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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단단한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여운과 마음의 밑자리,
성난 얼굴을 어루만지는 더운 손길
그리하여,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살아내리라.
우리 안의 마음속 허기를 눈 밝게 알아보는 작가 이혜경의 첫 소설집 『그 집 앞』이 재출간되었다. 1982년 등단 후, 긴 공백기를 지나 (그 직전 첫 장편 『길 위의 집』(1995)이 출간되긴 했으나) 첫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98년. 그로부터 다시 14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그 집 앞』. 신작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와 마침 때를 맞추어 출간된 첫 소설집은 작가의 더운 마음자리와 그 깊이를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등단 16년 만에 첫 소설집을 내면서, 작가는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이 가능하지 않아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었다. 가장 가까운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지붕 아래 모여 사는 사람들. 부부라는 혹은 부모자식간이라는 인연을 앞세워 서로에게 주어서는 안 될 상처를 주는 사람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그 ‘집’ 안에 똬리를 튼 폭력성과 강요된 희생에 대해 그는 낮지만 끈질긴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져 보인다. 양지보다는 그늘에 앉아 제 존재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작가는 기꺼이 그들의 어눌한 입이 되려 한다.
“예전에 초상이 나면 대신 울어주는 종을 곡비(哭婢)라고 했다지요. 작가라는 게 결국은 그런 곡비가 아닐지요. 크게 울 수도 없는 사람을 대신하는……”
그의 소설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부러 상처를 헤집어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아주고 더듬어줄 뿐이다. 때문에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문장들 앞에서는, 더불어 말을 아끼게 된다. 그저 마음을 어루만지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상처와 그리고 나아가 ‘너’의 상처도 들여다보게 하는 일. 그것은 그의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14년, 긴 시간을 지나 다시 들춰보는 그의 소설의 힘은, 그 시간의 힘으로 절로 더 단단해져 있는 듯 보인다. 혼자여서 때로 오히려 편안한 집. 그 집이 여기에 있다.